한의학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의서가 있다. 바로 ‘본초강목’과 ‘동의보감’이다. 약재의 효능을 말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인용되는 ‘한의학의 원전’이지만 정작 우리나라에는 ‘본초강목’이 완역된 적이 없다. 전 52권으로 분량이 워낙 방대해서다.

 
 
그간 번역가와 저술가로 활동해온 김종하씨(78)는 그 어마어마한 작업을 구상에서 출간까지 장장 18년에 걸쳐 해냈다. 지난해 말 출간된 ‘신주해 본초강목’(여일출판사)은 완역에만 14년6개월이 걸렸다. 번역한 분량만 200자 원고지 10만장으로 전 11권이다.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김씨의 끈기와 집념이 없었다면 해내지 못할 작업이었다. 그와 ‘본초강목’의 인연은 한의사였던 외조부가 맺어줬다. 어린 시절 외조부에게 ‘본초강목’의 우수성을 귀동냥하면서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으나 국내에 ‘본초강목’ 완역본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일본에서 펴낸 번역본을 접하면서 이를 번역하기로 마음먹었다.

“‘본초강목’은 400여년 전 쓰이긴 했지만 그 내용은 모두 2000~3000년간 축적된 것입니다. 그걸 이시진이라는 사람이 취합해서 펴낸 거죠. 보통 ‘동의보감’과 혼동하는데 ‘동의보감’이 처방 중심의 임상용 의서라면 ‘본초강목’은 약호에 따라 약재를 분류·기술한 약물학서입니다. 다른 의서와 달리 글 자체가 문학적이고 동양철학의 정수가 잘 담겨 있습니다.”

저본이 된 일본어판 ‘국역 본초강목’은 일본의 약학자 18명이 6년간 매달린 결과물로 전 17권에 달한다. 개인이 번역하기엔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처음에는 3~4년이면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나고 보니 4권밖에 번역을 못한 거예요. 제가 워낙 모르는 게 있으면 끝까지 밝혀내야 속이 풀리는 성미여서요. 번역하다가 ‘천불초(千佛草)’라는 풀이 나오는데 일본학자들도 도저히 이 풀의 정체를 밝히지 못해 그냥 뒀더군요. 이걸 밝히기 위해 중국, 대만의 본초학자들까지 만났지만 모르더군요. 결국은 서울대 규장각에서 찾아냈습니다. 서고에서 책을 뒤지다보니 천불초가 ‘떡쑥’이라고 나와 있더군요. 그때의 감격이란….”

사과상자에 넣어둔 번역원고 4권 분량이 장마로 인해 물에 젖어버렸을 때의 황망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시간은 흘러 결국 출간에 이르렀다. 그러나 김씨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다. 원문이 갖는 문학성을 살리기 위해 애를 썼는데 입력 및 교정 과정에서 많이 훼손됐다는 것. 그래서 그에게는 죽기 전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출간된 판본과 번역원고를 꼼꼼히 비교해가면서 이를 복구해 재판에 반영할 계획입니다. 어려운 작업이겠지만 18년 걸려서 번역도 했는데, 그거 못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