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등단한 안정옥 시인의 네번째 시집. 4부로 나뉘어진 시집은 네 가지 상징을 중심으로 한다. 각각 '꽃에 대한 두려움', '새'를 통해 상징되는 자유의 이미지, 죽음, 지나간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다. 시인 특유의 이미지 조합을 엿볼 수 있다.

부재(不在)하는 믿음을 부여잡고 자기의 사원을 세우려는 노역은 얼마나 허망할까. 새 시집 속의 안정옥은 우리네 생이 언제나 '한계의 표적'에 갇혀 있음을 말한다. 그리하여 뿔뿔이 달아날 뿐, 결코 한 구도 속으로 수렴되지 않는 생(生)의 중첩되는 불연속성을 시로 각인해 보인다. 우리는 경험의 견고성으로 일생이라는 문맥을 엮어가려고 애쓰지만 죽음의 그늘에 침윤받고 있는 삶의 문법이란 처음부터 불안한 것. 그렇더라도 그가 깨달은 도공이라면 스스로의 도로(徒勞)조차 부수며 빚어낼 수밖에 없다. - 김명인 (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안정옥의 시에는 목마름 같은 것이 있다. 그 목마름은 사막의 모래 위를 걷는 낙타의 울음이나 선인장의 독기 혹은 사슴의 고고하고 점잖은 그 무엇이 아니다. 그 목마름은 '노란 닭 모가지 같은 꽃'('꽃에 대한 두려움')의 그 무엇이다. 왜, 하필이면 노란 닭 모가지란 말인가? 닭 모가지와 꽃의 결합 자체가 그로테스크하다. 하지만 이 그로테스크함이 부정성을 노출한다기보다는 일정한 미적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이재복 (문학평론가)

1. 꽃에 대한 두려움
나비 키스
꽃에 대한 두려움
팽나무
감나무밭 묘지
고양이
내 혀는 뽕나무로 가득하다
죽음, 청개구리의
까마귀
늑 대
어부의 집
자 두
새
사과나무
새똥 참외

2. 여행이란
歲月如流
구름 속 발자국
눈물, 두어 방울
황금 지도
새 것
여행이란
죽음, 德과의 관계
흉내내다
겨울 보내기
416페이지
여우 같다
박수치다
환 상
맞이하는

3. 벽에 기댄 자전거
자동차
신 호
낡은 의자
오토바이
이발소 이야기
벽에 기댄 자전거
죽음은 없다
어 항
세탁기
마 당
山, 山, 山
모 래
소 파

4. 나는 걸어다니는 그림자인가
진 땀
따뜻함보다 더한
밤도둑
황혼을 가다
憧 憬
죽음, 독립적인 것은 없다
상처란
살구꽃 남자
나는 걸어다니는 그림자인가
내 사랑하는 문지기
그는 흠, 흠, 헛기침하며 주막을 갈 것이다
나로서는 대책 없는 봄날입니다

해설 - 이재복
내 안의 황금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