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박남준, 이병천 등 여러 시인 소설가들의 스승인 원로 시인 정양의 새 시집.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치열한 자기 반성, 곧지만 넉넉한 시심을 느낄 수 있는 이 시집은 전체 2부로 나누어져 있다. 시인의 고향인 김제 평야와 익산 사이의 마현리 이야기를 1부에 담았다. 6·25부터 5·16에 이르는 질곡 많은 시절을 그 곳에서 산 시인은 징용을 피하려고 전쟁 내내 벙어리 행세를 한 홀애비 기수 아저씨, 보리 타작하며 삐비 뽑아 먹던 기억, 소주 만들고 남은 쇠자래기로 죽을 쑤어먹고 취해서 논두렁에 픽픽 쓰러지던 아이들 등 전쟁과 관련된 기억이나 함께 어려운 시절을 견뎌온 사람들 이야기를 풍성하게 엮어낸다. 2부는 근간에 쓴 시들과 다시 손본 시 몇 편을 담았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장례식 즈음에 아픔과 용서에 대해 반추하고, 갈증과 사랑과 혁명이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가 하면, 고물차에 대한 애정을 통해 변해가는 세상과 변치 않는 신념의 괴리를 노래한 작품 등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