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케이스비어(1953- )는 1980년대 신디 셔먼, 샌디 스코글런드, 바바라 크루거 등과 함께 미국 현대사진을 선도한 대표적 사진작가다. 이들의 사진은 1970년대 이전까지 ‘현실 재현’이라는 사진의 본질을 고수하던 미국의 ‘모더니즘’ 사진을 의도적으로 거스르고자 ‘현실을 변형하고 연출’한 ‘포스트모던’계열의 예술로서 당시 크게 주목받았다. 제임스는 이후 사진을 인접 예술장르와 접목하여 인간의 지각과 현실/비현실에 관해 언급하는 현대미술의 중심 장르로 인정받도록 한 작가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현재까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제임스의 사진은 인물을 배제한 공간을 대상으로 한다. 그 공간들은 사람이 부재하지만 누군가의 존재를 상정하는 특정한 공간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그의 사진 대부분이 특정한 지역이나 문화권의 건축양식처럼 보이거나 적어도 인간의 손길이 닿은 - 창을 뚫고 문을 내어 사람이 다니도록 한 - 곳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제목들은 <스페인 목욕탕>, <룩소르>, <모스크>, <숙소(토프카프 궁전 이후)>, <극장(아크로폴리스 이후)> <어두운/밝은 구멍이 나 있는 터널> 등 직접적으로 그 공간을 지칭하고 있어 그의 사진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제목(기의)과 그것이 지시하는 이미지(기표)가 일차적으로 연결되어 자칫 그것이 특정 건축물의 실내를 찍은 순수 사진(straight photography)이라고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사진 속 공간은 주지하다시피 작가가 만든 모형이다. 이는 앞서 서두에 언급했듯 제임스가 자신의 작업에 사진이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리라는 일반적인 믿음과 인간 지각의 한계를 역이용하고 조각과 건축이라는 타장르를 적극 끌어들인 결과다.

물론 샌디 스코글런드, 토마스 디맨드, 빅 뮤니즈 등 유사한 개념으로 사진을 제작하는 눈에 띄는 작가들이 여럿 있으나, 제임스가 이들과 차별되는 지점은 그 조형적인 고유함 외에 사진 안에 의도적으로 그 단서를 암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사진 대부분은 사방에 나 있는 창과 아치로 빛이 스며들고 때로는 흙먼지가가 쌓여있거나 물이 차있는 일정한 공간적 특징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요소들은 때로는 모순적인 것으로 한 공간에 공존할 수 없거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이다. 이러한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오로지 관람자의 몫이다. 제임스의 사진은 언뜻 굉장히 중립적이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보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많은 차이를 준다. 누군가는 그것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으스스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이는 인간이 저마다 살아온 세계에 따라 예술작품의 감상과 해석도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제임스가 그의 사진 안에 근본적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