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서북쪽, 백운동의 작은 샘에서 솟아나온 물이 백악, 인왕, 목멱, 매봉 등의 여러 물줄기를 모으면서 옛 서울의 한복판을 가로질러 달렸으니, 이 작은 하천이 청계천이다. 동대문 옆 (五間水門)을 빠져나간 청계천은 중랑천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렀다. 발원지에서 중랑천 합류부까지의 길이는 13.7Km, 광동교 동쪽에서 오간수문에 이르는 본류의 하폭(河幅)은 10m에서 30m였다.

조선왕조가 한양으로 천도한 후 도성을 건설할 때, 청계천은 도로와 건물의 배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서울의 중심 도로였던 종로를 비롯한 큰길은 모두 청계천 물길을 따라 만들어졌다. 청계천은 또 도성을 양분하는 사회적 경계선이기도 하였다. 궁궐과 종묘, 사직, 주요 관청이 모두 청계천 이북에 들어섰으니, 청계천을 기준으로 하여 상하(上下)이원적인 공간 질서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서울 공간을 나누고 서울 사람들을 구분 지었던 청계천의 기능은 일제 강점기에도 변하지 않았다. 다만, 그 위계는 완전히 역전되어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청계천 이남의 남촌은 문명의 거리로 급속히 발전하였고, 조선인들이 거주했던 북촌은 낙후된 상태를 면하지 못하였다. 1926년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앞으로 옮겨오기 전까지, 조선총독부 청사(현재 남산 애니메이션 센터 일대), 경성부 청사(현재의 신세계백화점), 조선은행(현재의 한국은행), 동양척식주식회사(현재의 외환은행 본점), 조선식산은행(현재의 롯데백화점) 등 식민지 통치의 정치, 경제적 중심이 모두 남촌에 있었다.

일제 강점기의 청계천 변은 서울에서 가장 인구가 조밀한 지역이었다. 서울에 새로 들어온 일본인들이 남산 북쪽 기슭에 널찍한 터를 잡고 집을 지을 때마다. 수많은 서울 사람들은 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빼앗기고 쫓겨났다. 이들은 서울을 떠나거나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청계천 변 일대로 몰려들었다. 일제 강점기 청계천 변 관수동, 다동, 무교동, 삼각동 등의 인구밀도는 살인적이었다. 그런 상태에서도 일제 당국은 청계천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으니 청계천 변 주민의 수인성 전염병 감염률도 전국 최고 수준이었다.

2차대전에 패망한 일본이 물러가자 서울은 다시 우리의 도시가 되었다.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는 사람들, 광복된 나라로 귀환한 사람들, 월남한 사람들이 꾸역꾸역 서울로 몰려 왔다. 일본인들이 두고 간 집만으로는 이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었다. 새로 집을 지어야 했지만, 건축자재도 구하기 어려웠다. 청계천 변에는 본래 상대적으로 낡고 퇴락한 집들이 많았지만, 해방 후의 혼란과 전쟁을 겪으면서 그 집 자리들은 다시 아무 재료로나 얼기설기 지어 놓은 판잣집으로 꽉 차 버렸다. 그 후 청계천이 완전히 복개된 1970년대 말까지, 청계천을 따라 서울의 대표적인 판자촌 거리가 형성되었다.

1958년 광교에서 오간수문에 이르는 청계천 도심부 구간이 복개되었고, 1966년부터는 그 나머지 하류구간이 복개되기 시작하였다. 이로써 청계천은 시민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판잣집들로 가득 찼던 누추한 모습을 더는 보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청계천 위를 가로지르던 전통미 넘치는 교량들과 청계천 양인의 문화재들, 청계천 변 판잣집에서 살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도 자취를 감추었다.

청계천을 덮어버리고 그 위에 고가도로를 놓은 지도 이제 한 세대가 지났다. 그리고 그동안 서울은 또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도시의 외형이 바뀌었고, 도시민의 생활 방식과 문화가 바뀌었다. 우리가 지내 온 20세기는 허겁지겁 앞 만 보고 치달린 시대였다. ‘근대화’는 시대의 과제였고, ‘개발’은 그에 도달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 개발은 전통경관과 전통문화에 적대적이었다. 수백 년간 우리 곁에 있던 많은 것들이 ‘개발’의 이름으로 사라져 갔다. 청계천 개발과 청계천 변 재개발도 그런 일 중 하나였을 뿐이다.

우리는 20세기 내내 마치 자동차를 타고 달리듯 달렸다. 전진과 가속만 있었을 뿐 후진은 예외적이었다.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하고 때로는 뒤돌아 걷기도 하는 여유로움은 한갓 사치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걷는 일의 여유로움과 가치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 이제 정해진 길을 빠른 속도로 달려야 했던 시대는 지난 것이 아닐까. 기로(岐路)에 서서, 어느 길을 택할지 깊이 고민하는 자세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청계천을 덮고 있던 자동차 도로를 걷어내는 일은, 그래서 우리의 생활태도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목차Prologue = 7

제1부 청계천의 역사 = 15
  1. 개천(開川) = 16
  2. 다리 = 18
  3. 준천(濬川) = 42
  4. 일제 강점기의 청계천 = 50
  5. 해방 후의 청계천 = 52
  6. 복개(覆蓋)와 건설 = 58

제2부 청계천의 문화 = 79
  1. 청계천변의 민속 = 80
  2. 청계천에 얽힌 이야기들 = 86
  3. 천변의 생업 = 118
  4. 문학 속의 청계천 = 124
  5. 그림 속의 청계천 = 146

Epilogue = 151

부록
  1. 자료편 = 156
    1. 개천(開川) = 156
    2. 개천(開川)에 오물투기를 금하자는 주장에 대한 반론(反論) = 158
    3. 준천사실(濬川事實) = 166
    4. 일제하의 청계천 복개 = 185
  2. 연표로 본 청계천 = 197
  3. 자료목록 = 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