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클래식 음악 에세이. 어느 정도냐 하면,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음악을 전혀 모르더라도 미안하지 않을 정도이다. '꼭 들어봐야겠다'는 부담감을 알게 모르게 안겨주는 추천 음반 하나쯤 나올 법도 한데, 책에는 앨범 자켓사진 하나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지은이의 말처럼, '클래식을 이런 식으로 바라보고 느낄 수도 있구나'하면 된다.
음악 평론가 진회숙씨의 책이다. MBC FM의 '나의 음악실', KBS 위성 TV의 '클래식 오딧세이' 등의 프로그램을 구성한 분이라고 하면 아실 것이다. 진중권씨의 누나, 라고 하면 귀가 번쩍 뜨이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22곡의 클래식 음악에 실은, 지은이의 솔직한 이야기들이다.
슈베르트의 가곡 '음악에 부쳐'를 들으면서, 지은이는 '475 세대의 좌절된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그 시대 남자들이 얼마나 무거운 가문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는지를 잘 모를 것'이라면서, 예술에 대한 동경이 한낱 사치로만 여겨졌던 세대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는다.
베를린에서 만난 캐테 콜비츠의 조각 '피에타' 앞에서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에 나오는 아리아를 들으며 종교적인 감성에까지 도달하는 인간의 슬픔을 생각한다. 클레멘티의 소나티네를 왜곡한 에릭 사티의 '관료적인 소나티네'를 통해서는, 틀에 박힌 피아노 연습을 억지로 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고통을 보상받는다.
음악과 예술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과 풍부한 이해가 잘 어우러져 있는 수필들이다. 오랫동안 글쓰기를 짝사랑해왔다는, 이 글을 쓰는 동안 비로소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갖곤 했'다고 말하는 지은이의 글솜씨도 편안하게 느껴진다. - 이혜리(2002-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