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사회과학자 스티븐 룩스(Steven Lukes)의 책 󰡔3차원적 권력론󰡕은 영어 원제목이 “Power: A Radical View"로 초판이 1974년에 나왔다. 책의 원제목처럼 이 글은 권력에 대해 근본적으로 분석한다. 이 책은 당초 룩스가 소르본느 대학에서 강연한 것을 논문형태로 바꾼 것인데, 책의 분량은 많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이 얇은 책은 당대를 풍미하던 기존 권력이론에 도전적인 문제를 제기했고, 적지 않은 이론적 혁신을 이룩했다. 이 책의 역자는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1992년 번역판의 역자서문에서 이미 이 책이 권력이론사에서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룩스가 제시하는 권력이론의 핵심은 무엇일까? 룩스는 우선 당대의 지배적인 생각을 비판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1차원적 권력이론

 룩스는 가장 대표적인 다원주의 이론가인 로버트 달(R. Dahl)의 권력개념을 검토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달의 대표작 ‘누가 통치하는가?’를 분석하며 룩스는 기존의 다원주의 이론가들은 권력을 밝히는데 있어 관찰 가능한 형태들에만 주목한다고 분석한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자신들이 강조하는 이른바 의사결정(decision making) 연구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로버트 달에게 권력은 오직 일련의 구체적인 결정들에 대한 사려 깊은 검토가 이루어진 이후에야 분석될 수 있는 것이다. 즉 룩스에 따르면 다원주의자들이 초점을 맞추는 곳은 여러 사회적 쟁점들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명시적으로 나타나는 형태들이라는 것이다. 다원주의자들에게 이 쟁점들은 정책에 대한 명시적인 선호로 나타나고, 정치 참여를 통해 나타나는 이해관계들의 관찰 가능한 즉 가시적인 갈등을 수반한다.

2차원적 권력이론

 로버트 달을 비롯한 다원주의 이론가들의 주장에 대해 바크라크(P. Bachrach)와 바라츠(M. Baratz)는 논문 ‘권력의 두 얼굴’을 통해 이들의 주장이 권력을 충분히 잘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들에 따르면 다원주의자들은 의사결정이나 거부권 행사와 같은 명시적인 요소들의 중요성을 과도하게 강조한다. 그 때문에 1차원적 권력이론은 권력이 의사결정의 폭을 상대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쟁점들로만 한정지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바크라크와 바라츠는 ‘비결정’(non-decision making) 개념을 강조하는 데, 이것은 의사결정의 폭을 제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들에 따르면 권력을 만족스럽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1차원적 권력이론이 강조하는 의사결정과 자신들이 강조하는 비결정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결정 행위는 공동체 속에 존재하는 기존의 이익이나 특권의 배분을 변화하려는 요구들이 밖으로 표출되기도 전에 아예 막아버리거나 좌절시키는 것이고, 의사결정자의 가치나 이해관계에 잠재적으로 혹은 명시적으로 도전하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리는 일종의 수단이다. 이처럼 바크라크와 바라츠는 1차원적 권력이론을 비판하며 새로운 쟁점을 제기하지만 룩스가 분석했을 때, 이들은 앞선 논자들과 공통점을 또한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들 모두는 관찰가능한 갈등만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룩스는 이러한 점을 강조하며 이들의 분석은 다원주의에 대한 제한적 비판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3차원적 권력이론

 룩스는 관찰가능한 것은 물론 잠재적 쟁점과 갈등에도 주목해서 논의를 확장시킨다. 그래서 사회세력과 제도적 조치에 의해서건 개인들의 결정을 통해서건 간에 잠재적 쟁점들이 정치로부터 배제당하는 여러 가지 방식들을 고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룩스의 3차원적 권력이론은 그람시(A. Gramsci)의 헤게모니론을 연상시키는데, 룩스는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과 상이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배제당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무엇인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그 결과 이해관계를 표현하지도 못하는 상황도 함께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룩스가 보았을 때, 가장 효과적이고 교활한 권력 행사는 바로 애초부터 권력을 둘러싼 갈등이 밖으로 돌출되지 못하게 막는 것이고, 피지배자가 자신이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다원주의자들이나 이를 비판한 바크라크와 바라츠 모두 이러한 점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권력에 대한 좋은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고, 이른바 3차원적 틀이 필요하다는 것이 룩스의 주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