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박경수는 1955년 사상계 창간 2주년 기념 현상소설모집에 당선되어 사상계의 장준하와 인연을 맺었고 이후 사상계사 편집기자, 국토건설본부 간사 등을 거치면서 장준하를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특히 필자는 장준하의 손발이 되어 그의 글들을 대필했었는데, 자서전 『돌베개』가 바로 필자의 손을 거친 책이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장준하의 삶과 그의 내면을 세세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바로 엄혹했던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사상계』를 통해 '장준하'라는 한 인물에 매혹되고 감복하여 한평생 그의 삶을 화두처럼 껴안고 살았던 한 노기자의 열정의 소산인 것이다. 필자는 2년 전 '디지털 사상계'와 재미 교포 신문 「koreana news」에 이 글을 연재했으며 그 원고가 이 『장준하―민족주의자의 길』로 엮어져 나왔다. 앞서 이 책은 1995년에 『재야의 빛 장준하』라는 책제로 출간되었으나 곧 절판되었고, 이번 신간은 상당 부분 수정.보완이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당시 세상의 말에 '『思想界』가 곧 장준하다' 가 있었다. 『思想界』가 죽게 되고 그 얼마 뒤에 장준하도 유사한 죽음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그 말은 더욱 빛나는 것이 되었다. 그 『思想界』의 창간이 1953년이고 2년 뒤에 창간 2주년기념 현상소설 모집의 사고(社告)가 났다. 당시 군의 이등병이던 저자가 『思想界』의 장준하와 인연을 맺게 한 계기가 그것이고 그로부터 두 달 후에 저자는 입상되어 그 시상식에 감으로써 그를 만나게 되었다. 지금은 없어진 종로 화신 앞에 있던 한청빌딩 2층이 思想界社이고 거기에서 시상식이 있었으며, 저자는 이등병 군복 차림이었다. 그 때 장준하의 인상을 저자는 후일 어느 글에 썼는데 일부를 옮기면 이렇다.

"맨 처음 그분을 뵌 인상은 한마디로 그처럼 잘 생길 수가 없다 싶으리만큼 이목이 청수한 30대 후반의 미남 사장이었다. 그건 비단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인 것이 아닌 것으로, 그 후 그분을 처음 보게 되는 사람들로부터 '참 잘 생긴 분이더라' 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가 있었다. 희고 깨끗한 얼굴, 그 얼굴의 눈가에는 시종 조용한 미소가 떠 있었다. 기름을 바르지 않은 머리의 한 가닥이 흰 이마에 약간만 내려와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이 분의 그 기름을 바르지 않은 머리와 함께 역시 그것 밖에는 매고 입고 하지 않는 감색 넥타이와 감색 양복은 유명한 것이었다."

안병욱은 그의 인상을 다음의 말로 표현했다. '영롱여옥(玲瓏如玉 : 영롱하기가 옥과 같음)이요, 순수무잡(純粹無雜 : 순수하여 잡됨이 없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장준하 형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하는 계기가 되었다' 는 것이다. 뒤에 思想界社 기자가 된 저자도 그와 같은 것이었다. 그 시절의 모든 사원들 분위기가 그랬는데, 누가 시켜서라거나 선동해서도 아니면서 사장을 중심으로 사내의 기운 자체가 그렇게 자발적이고 헌신적이었다. 김상협·김준엽·현승종·황산덕 등 10수명의 기라성같은 편집위원을 위시하여 말단에 이르기까지 '동인들' 모두가 장준하를 닮아서 하나로 뭉쳐진 무슨 구국의 집단과도 같은 것이 思想界社였다.

그 중에서 저자에게는 일반 사원과 다른 임무 하나가 지워져 있었는데, 그것은 사장의 글 시중을 드는 일이었다. 사장도 글을 손수 쓰지만 바빠서 구술할 때의 대필 등을 말한다. 저자의 그러한 수발은 思想界社에서나 후일의 국토건설본부 시절이나 재야의 『씨알의 소리』시절이나 계속되었다. 그만큼 이런 수발을 들면서 장준하라는 큰 인물과 같이한 시간이 남보다 다소 많았던 까닭으로 저자는 감히 그 일대기를 초잡아볼 엄두를 내게 되었다. 그러나 이 엄청난 행적의 인물에 관한 총체적 일대기를 초잡하는 것이, 자신의 능력을 돌아볼 때 엄두만으로 될 바 아니고 결심에 이르게 하는데는 思想界 동인들의 격려와 후원의 힘이 컸다.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상임 이사인 이종인(李鐘仁)은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 면서 강작해 밀고 신영미디어 사장 고성훈은 저자의 향리 전사(田舍)에까지 내려와 종용하고 후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능력 탓으로 허송한 햇수를 밝히기조차 부끄러울만큼 집필 기간을 천연해가며 겨우 어지러운 초잡기를 마친 것인데 마지막에 힘을 보탠 것이 해돋이 출판사의 사장 권오훈이다. '저같은 군소 출판인으로서 이런 당세 위인의 전기를 초장으로 내본다는 것은 영광입니다. 지금 이런 세상에 그 책이야말로 한 시가 급합니다' 가 그의 말이었다. 필명이 권광욱(權光旭)으로 본분이 소설가인 저자와 동향에 사제간의 은의를 맺고 있는 터인데 예사로 읽지 못할 난필의 원고를 교열에서부터 편집·교정을 손수하며 독촉이 성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