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손으로 돌아보라>는 언어와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시인의 숙명을 보여주는 산문집이다. 어디까지나 불필요한 장식이나 어설픈 기교를 떨쳐버리고 담백한 산문의 맛을 살렸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매순간 죽음에 가까워짐을 깨달을수록 살아있음의 격렬한 역동성을 확인하려는 시인의 의지와 생에 대한 예찬이 들어있다.
음악을 좋아해서 작곡가가 되고자 했던 한 청년, 오미자 술의 감동적인 빛깔에 취해 친구를 용서하게 된 술 애호가, 라디오 안테나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들을 생각하는 교수, 길섶에 피어 있는 달개비 꽃에서 삶의 경이를 깨닫고 시를 짓는 시인, 아직 남은 자연을 만나기 위해 부지런히 길을 떠나는 여행객, IMF의 칼바람 속에서 아들 형제를 보육원에 맡기고 돌아서는 아버지와 이를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는 서민의 모습까지...
시인은 "사람 속을 걸어 / 사람 밖으로 나"가는 우리의 삶을 여행과 일상, 음악과 시 혹은 자연과 사람이라는 각기 다른 망원렌즈로 들여다본다. 그리고는 "가볍고 떫고 맑은 맛!"이 나는 산문을 써나갔다. 세상의 무거움을 충분히 짊어진 가벼움과 세상과 쉽사리 몸 섞지 않겠다는 결의를 담고 있는 떫음, 세상의 탁함을 받아들여 오래도록 걸러냄으로써 얻어진 맑음으로 말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우리는 세상을 관조하되 세상에 동화되지 않고 인생을 향유하되 인생을 허비하지 않는 황동규의 모습을 맘컷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 책머리에
제1부
무소유의 극치 | 겉과 속 | 라디오 안테나의 폭 | 수단이 아닌 목적의 삶
나의 길 | 꽃들의 입장 순서 | 강릉 초당동 | 갈림길 | 두 봉암사(鳳巖寺)
황홀한 건물들 | 제때에 몽둥이질하기 | 오미자 술 이야기 | 슬픈 낙관(樂觀)
'자존심'의 고향 | 봄비 속의 생각 | '핸드폰'과 삶의 깊이 | '괴짜'의 그리움
눈에 잘 띄지 않는 꽃 | 삶의 실체를 보려면 | 백령도를 찾아서
제2부
석굴암의 진짜 크기 | 일회용 시대 | 차(茶) | 순간적 진실과 윤리적 상상력
상원사 길 | 언어 정책의 폭력 | 어떤 젊음의 죽음 | 기다림의 미학(美學)
무소유의 소유 | 사투리 | 노래·춤 좋아하는 한국인 | 꽃이름과 민주주의
박물관의 재발견 | 아파트의 리듬과 자연의 리듬 | 이중(二重)생활을 위하여
우리집의 원형(原形) | 지구 안의 모든 것 | 바쁜 세상에서 천천히 살기
진짜 여행 |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 | 예술가의 태어남
제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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