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과학은 본질적으로 아니키즘적 영위이다. 즉 이론적인 아나키즘은 그것을 대신하는 법과 질서에 의한 여러 방법들보다도 인도주의적이고, 또한 한층 더 확실하게 진보를 고무한다.
1. 이것은 역사적 에피소드에 대한 조사와, 관념과 행동 사이의 관계에 대한 추상적 분석에 의해서 밝혀진다. 진보를 방해하지 않은 유일한 원리는 '무엇이라도 좋다(anything goes)'이다.
2. 예를 들어, 우리들은 잘 확증된 이론 및 잘 확립된 실험 결과에 모순된 가설들을 사용할 수 있다. 우리들은 과학을 반귀납적으로 진행함으로써 진보시킬 수 있다.
3. 새로운 가설은 이미 수용된 '이론'에 일치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정합성의 조건은, 보다 나은 이론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낡은 이론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합리적이다. 잘 확립된 이론에 모순되는 가설은 다른 어떤 방법에 의해서도 얻을 수 없는 증거를 우리들에게 제공한다. 이론의 증식은 과학을 위해서 유익한 반면, 획일성은 과학의 비판적 능력을 손상시킨다. 또한 획일성은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협한다.
4. 아무리 옛것이고 불합리하다 하더라도, 관념치고 우리들의 지식을 개선시킬 수 없는 것은 없다. 사상사 전체는 과학에 흡수되고 이론 하나하나를 개량시키는데 이용된다. 정치적인 간섭도 배제되지 않는다. 현상태에 대한 대안들에 저항하는 과학의 맹목적인 배타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간섭이 필요할 수도 있다.
5. 어떠한 이론도 그 영역내의 모든 사실들과 합치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론만을 탓할 일은 아니다. 사실들은 낡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성되며, 사실과 이론과의 충돌은 진보에 대한 증명일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친숙한 관찰적 개념에 함축된 원리들을 발견하려는 시도의 찻 단계이기도 하다.
6. 이러한 시도의 실례로서,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가 지구의 운동을 반박하기 위해 사용했던 '탑의 논증'을 검토하려 한다. 이 논증은 '자연적 해석'에 포함하는데, 그 자연적 해석은 그것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내용을 결정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관찰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관념이다. 갈릴레오는 그 자연적 해석을 코페르니쿠스와 모순되는 것으로 보고, 그것을 다른 것으로 대치하였다.
7. 새로운 자연적 해석들은 새롭고 고도로 추상적인 관찰언어를 구성한다. 그것들은 도입됨과 동시에 은폐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변화를 알아차릴 수 없다. 그것들은 모든 운동의 상대성과 회전관성법칙의 관념을 포함한다.
8. 변화에 의해 생기게 된 초기의 난점들은 임시변통적 가설에 의해서 제거된다. 임시변통적 가설은경우에 따라서 긍적적인 기능을 하기도 하는 것으로 판명된다. 즉 그것은 새로운 이론이 숨돌린 여유를 주며, 미래의 탐구방향을 지시한다.
9. 갈릴레오는 자연적 해석과 더불어, 쿠페르니쿠스를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 보이는 감각들을 바꾸어 버렸다. 그는 그러한 감각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코페르니쿠스가 그것들을 무시했음을 찬양한다. 또한 그는 그의 망원경의 도움을 받아 그러한 감각들을 제거해 버렸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그는 왜 망원경이 하늘의 참된 상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가에 대해서는 하등의 이론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10 .망원경에 의한 '최초의' 경험도 그러한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망원경에 의한 최초의 천체관측은 불명료하고, 불확정적이고, 모순을 안고 있으며, 누구든지 기구의 도움없이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것과 상충된다. 또한 망원경에 의한 착각과 실제적인 현상을 구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되던 유일한 이론은 간단한 테스트에 의해서 반박되었다.
11. 한편, 명백히 코페르니쿠스적인, 망원경에 의한 몇 가지 현상들이 있다. 갈릴레오는 이 현상들을 코페르니쿠스를 지지하는 독립적인 증거로 도입하는데, 그 상황은 오히려 하나의 논박된 견해-코페르니쿠스주의-가 다른 논박된 견해-망원경에 의한 현상이 신뢰할만한 천체의 상이라는 관념-로부터 나온 현상들과 어떤 유사성을 갖는 상황이다. 갈릴레오는그의 스타일과 그의 영리한 설득기술 때문에, 그리고 그가 낡은 관념들과 그것들에 연관된 학습의 기준에 기질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호소했기 때문에, 성공을 거둔 것이다.
12. 그와 같은 '비합리적인' 지지의 방법들은 과학의 여러 부분들의 '균일하지 않는 발전(마르크스, 레닌)때문에 필요하다. 코레르니쿠스주의를 포함한 근대과학의 본질적인 구성요소들은 과거에 있어서 이성이 빈번히 억제되었기에 비로소 살아남았다.
13. 갈리레오의 방법들은 다른 분야들에서도 마차가지로 작동한다. 예컨대 그것은 유물론에 반대하는 현존하는 논증들을 제거하거나, 심신에 관한 철학적인 문제들을 종결시키는데 사용될 수 있다.(그렇지만 이것에 대응하는 과학적인 문제들은 그대로 남는다)
14. 지금까지 얻어진 결과는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의 구분을 폐지하고 또한 이와 관련해서 관찰어와 이론어의 구분을 무시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 두가지 구분은 모두 과학의 실천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그것들을 강요하는 것은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15. 마지막으로, 6-13장의 논의는 밀의 다원주의에 대한 포퍼의 변형은 과학적 실체와 일치하지 않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을 파괴할 것임을 보여준다. 과학에 있어서 이성은 보편적일 수 없으며, 비이성은 배제될 수 없다. 과학의 이러한 특징은 아나키즘적인 인식론을 요구한다. 과학은 신성불가침한 것이 아니며, 과학과 신화 사이의 논쟁은 어느 한편이 승리를 거두는 일이 없이 종결된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아나키즘 옹호론을 더욱 강화된다.
16. 라카토스의 시도, 즉 (1)명령을 발하지 않고, (2)우리들의 지식증대 활동에 제한을 가하지 않는 방법론을 구성하려는 재간있는 시도마저도 앞서의 결론을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라카토스의 철학은 그것이 단지 하나의 위장된 아나키즘이기 때문에 자유적인(리버럴)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근대과학으로부터 추출된 그의 기준들은 근대과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 신화, 마술, 종교 등과의 논쟁에 있어서 중립적인 조정자로 여겨질 수 없다.
17. 더구나 내용의 집합들 사이의 비교를 포함한 이러한 기준들은 항상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론들의 내용의 집합들은, 그것들 사이에 어떤 통상적인 논리적 관계-포함, 배제, 중복-가 성립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비교불가능하다. 이것은 우리들이 신화와 과학을 비교할 때 일어난다. 또한 그것은 과학 자체의 가장 진보되고, 가장 일반적이며, 따라서 가장 신화적인 부분들에 있어서도 일어난다.
18. 따라서 과학은 과학적 철학이 인정하려고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신화에 가깝다. 그것은 인류에 의해 발전된 수많은 사고양식 중의 한 가지이며, 반드시 그것들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눈에 뚜렷하게 보이고, 요란하며 또한 무분별하지만, 그러나 이데올로기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그것의 이점과 한계를 검토해 보지도 않고 그것은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근본적으로 우월한 것이 된다. 또한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는 일과 거부하는 일이 개인에게 맡겨져야 하듯이, 국가와 '교회'와의 분리는 국가와 '과학', 즉 가장 새롭고 가장 공격적이며 또 가장 교조적인 종교적 제도인 과학과의 분리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와 같은 분리야말로, 우리들이 가질 수 있지만, 그러면서도 한번도 충분히 실현되지 않는 인간성을 성취하기 위한 유일한 찬스인지도 모른다.
[출처] 방법에의 도전-파이어아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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