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인간을 죽이고 살리는가"
오시이 마모루. 1995년작인 '공각 기동대'로 그의 난해함과 엄청난 허무주의는 검증된 바 있다.

<야수들의 밤>(2000년작)은 애니메이션 영화 '인랑'(1999년작, 원작 <견랑전설>) 첫 신과 동일하다. 화염병 가두시위를 시작으로, 작가는 인간성을 탐구하고 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상황을 리포팅한다. 고교 활동가 레이가 경험한 이상야릇한 사건을 빌미로 레이의 학내조직은 경시청 형사 고토다의 끄나풀이 된다.

타고교를 전전하며 에스에르(SR)파의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는 레이와 측근들. 조직 엄호를 둘러싼 고교 활동가들의 신경전과 과도한 정치의식에 전공투 시절의 작가가 얼비친다. 고교활동가로서의 애매한 위치, 가정 내 투쟁과 학내 민주화 투쟁을 병행해야 하는 고충이 토로되는 가운데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튄다.

한 노인이 들려주는 인간과 흡혈 종족의 기나긴 투쟁사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전공투운동'(全共鬪運動, 전학 학생 공동 투쟁회의 : 반미.반체제.반전을 기치로 1968∼1969년에 활성화된 일본학생운동)은 분위기 메이커로서 그 역할을 다하게 된다.

로스차일드라는 일족에서 출발한 흡혈족의 역사는 중세의 종교 재판,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 소비에트 연방의 비밀 경찰(KGB)을 타고 넘으며 장황하게 설명된다. 마침내, 흡혈귀와 인간의 교배는 인간성 말살, 정치적 억압의 산물이라는 주장으로 귀착되는데...

작가는 노인과 고토다의 입을 빌려 확증적으로 이 사실을 밝힌다. 흡혈족이 인간과의 교배를 통해 이 세상에 복수를 감행할 것이라는 경고는 의미심장하기까지 하다. 흡혈족과 인간의 투쟁이라는 외피 두르고 있지만, 오시이 마모루의 눈은 인간들의 정치 투쟁을 겨누고 있다.

'무엇이 인간을 규정하는가', '무엇이 인간을 죽이고 살리는가'란 노골적인 질문. 오시이 마모루도 슬쩍 피해 버린 이 질문에 답할 자, 누구인가? 정치 투쟁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참담함은 과연 어떻게 전복될 수 있을까? 배경에 전공투 시절을 채워넣은 이유를 조금은 납득할 수 있을 듯하다.

주제의식에 비해 책은 의외로 재미있다. 전공투 세대의 좌절과 현실회귀는 이처럼 다른 영역에서 접수되어, 작가의 오늘을 규정짓는다. 그 점이 뼈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