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오 시인의 열한 번째 시집. 이 시집이 생의 자반처라는 하종오 시인은 [현대문학]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1954년)하였다. 시 65편이 수록된 시집 <반대쪽 천국>은 서울과 강화도를 오가며 대비된 농촌과 도시의 극명한 풍경을 넘어 물신주의의 비인간화가 몰고 온 극단적인 형상들과 유족할리 없는 외국인 노동자의 삶을 거침없이 등장시키고 있으며, 농촌, 즉 강화도에서 만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정겹게 건네고 있다. 또한 도시 생활과 병행하고 있는 농촌 생활에서 깨달은 것들을 능숙하게 시로 승화시키는 하종오 시인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시적 장치를 가지고서 마술적으로 그 세계 안에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비육우 살찌워 파는 당신이
꼴 주고 처마 아래 앉아 쉬는 그때,
다른 당신은 다른 축사에서 투우에게 소주 먹인다
밀리지 않고 무릎 꿇지 않고 넘어지지 안흥려고
콧김 내뿜으며 뿔 세운다 투우는

육계 살찌워 파는 당신이
먹이통 둘러보며 사료 주는 그때,
다른 당신은 다른 축사에서 쇠고깃덩이 높게 걸어놓고
모가지길어지고 다리에 힘 붙드록
투계에게 뛰어올라 쪼아먹게 한다
벼슬 곧추세우고 두리번거린다 투계는

잡종개 살찌워 파는 당신이
동네 돌아 음식 찌꺼기 모아 끓이는 그때,
다른 당신은 다른 축사에서 투견에게 닭 잡아 먹인 뒤
이빨 묶어 공중에 오래 매달아둔다
턱 근육이 강해져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 투견은

장사꾼들이 시골집 찾아와
비육우와 육계와 잡종개를 살펴보며 흥정하는 그때
바로 그때, 당신들은 주머니가 텅텅 비고
도박꾼들이 도시경기장에 몰려와
투우와 투계와 투견에게 판돈 태우고 핏대 올리는 그때,
바로 그때, 다른 당신들은 가슴 두근, 두근, 두근거린다

당신들과 다른 당신들이 아는 것은
저들을 살리거나 죽일 수 있다는 것이지만,
당신들과 다른 당신들이 모르는 것은
그걸 저들은 알기 때문에
제 일족에게 먼저 싱싱한 피의 맛 보여주려고
죽기 살기로 덤빈다는 것이다]

표제 시 <반대쪽 천국>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