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의 일상, 프로방스의 향기
`꿈으로만 간직했던 전원생활의 맛이 끝없이 펼쳐진다!` 어떠튼 진부하다면 진부하고 많이 유치한 이 카피라이트는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는 전혀 진부하지도 유치하지도 않다는 느낌이 든다. 한편으로 이 책은 프로방스의 요리를 찬양하기 위한 식도락 기행문이기도 하다.

여기서 아름다운 송가의 대상이 되는 프로방스는 기후, 사람들, 오페라 갈라와 같은 음식들, 집들, 골목들, 카페 심지어 돼지와 개들까지 아우르는 환희, 기쁨의 총체적인 응축물이며, 가령 20세기 유럽의 샹그릴라쯤이나 될까. 그런데 그런 찬탄은 사카린 같은 수사적 표현이나 감탄 또 감탄으로 이어지는 허풍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짐짓 모른 척하기 혹은 에둘러 말하기, 솔직함, 잔잔한 유머의 달인인 작가는 이 나른한 프로방스의 일상을 햇살 아래 남김없이 드러낸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요리들, 요리사들의 이름과 그들의 품성, 요리를 매개로 이어지는 은근한 삶의 체취들이 그 일상의 무성하고 서늘한 그늘 아래서 감미롭기도 하고 강렬하기도 한 그런 냄새를 피우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는 프랑스 요리를 호텔 따위를 떠올리지 않고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바지만, 이 책을 보면 본바닥을 떠나 상품화된 메뉴(음식)가 얼마나 사람들의 상상력과 활력을 제어하는가를 알 수 있다. 프로방스는 포도주 산지, 즉 포도를 재배는 지방이며, 거기에는 우리의 농사에 비견될 만한 가혹한 노동이 전제가 된다.

그 노동을 수행하고 수확하는 사람들, 프로방스의 농부들이 실은 이 책의 주인공이고, 작가는 이들의 친절과 기질에 매료된다. 그리고 작가는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식탁에 앉아본 다음에 이런 책을 썼다. 차를 몰고 어디를 가서 자리를 잡고, 손짓으로 음식을 청하고, 먹고, 마시고, 차를 타고 다시 돌아와서 쓰는 이야기들과는 많이 다르다.

사람의 이야기가 쏙 빠진 여행 안내서, 메뉴판 같은 식도락 농담에 지친 사람들은 이 책에서 만만치 않은 재미를 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속편의 제목은 "언제나 프로방스"다. 그것 말고 다른 어떤 제목을 부칠 수 있었을까.

메르시 프로방스. - 배상규(한국경제신문 출판부 근무) ( harin@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