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신문학기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기간 동안에 나온 노동시 ․ 농민시가 아직도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이 문제를 여전히 미결로 남아 있게 하는 요인 중의 하나일 터이다.
편자는 여기서 노동시 ․ 농민시가 문학사적 사회사적 ․ 운동사적 측면에서 명료한 자리매김을 받음과 동시에 역사적 위치 및 의미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통시적 고찰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여지껏 이러한 작업은 전무한 상태라서 그 어려움은 무척 컸다. 우선 편자의 짧은 식견 탓도 있었지만 자료를 찾느라 남산 국립 중앙도서관을 드나드는 데만도 꼬박 2개월여 가량이 걸렸다. 더군다나 국립도서관에마저 원하는 자료가 없을 때는 꽤 애를 먹기도 했다.
아무튼 편자로서는 능력 밖의 일을 하느라 만용을 부려본 셈인데 이 시선집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여기에 실린 시들이 이제까지 나온 작품들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다.
작품을 선정할 때는 될수록 이념적 선입관념으로써 작품을 판단하는 방식을 버리고자 노력했으며, 시 그 자체가 당대의 현실상황 속에서 노동자와 농민에게 얼마나 성실하고 진실되게 접근했느냐 하는 것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았다.
제1부에는 개화기부터 6.25 전까지의 기간 동안에 나온 작품들 중에서 개화가사와 민요를 포함한 시들을 묶어 보았으며, 제2부에는 1950년대의 시들을 추려 보았다. 제3부에는 1960~1970년대까지의 시들을, 제4부에서는 1980년대 이후의 시들을 모아 보았다.
여기에 실린 시들은 모두 지면에 발표된 것들이며, 대부분 생산현장의 삶을 바탕으로 한 노동현실 및 농촌현실을 다룬 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을 배열한 순서는 시인의 데뷔 연도를 기준으로 했고, 데뷔 연도가 같을 경우에는 나이 순서대로 했다. 또한 작품이 발표된 순서에 유념한 대목도 간혹 있음을 밝혀 둔다. '
특히 개화가사와 해방 전의 작품들에 한해서는, 극히 몇 군데에 있어서 오늘날의 표기법대로 정정해 주었으나 가급적 옛맛이 손상됨이 없도록 그대로 발표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음도 아울러 밝혀 둔다.
이 책을 엮으면서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었다면 1950년대의 노동시 ․ 농민시들이 다른 시기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거듭된 얘기이긴 하지만，1920~30년대와 해방 직후에 생산된 상당수의 문학작품이 여전히 현재와 단절된 상태로 공동화(空洞化)되어 있는 점이 가장 뼈아프게 받아들여졌다. 감히 말하건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러한 문학적 단절상태의 양 끝을 부분적으로나마 이어준 데 있지 않을까.

누구나 알고 있듯이 문학의 대상은 인간이다. 따라서 인간이 표출해 내는 갖가지 삶의 양태와 분노, 슬픔, 절망, 희망, 원한, 꿈 등과 같은 정서적 표상들도 자연스럽게 문학적 대상에 포함된다.
인간에게 늘 간섭과 영향력을 행사하고 때때로 거대한 힘으로 인간을 지배하려 드는 현실상황 역시 그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오늘날 문학적 구조 속에서 노동시 ․ 농민시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처럼 인간이 사회와 늘 마주치면서 빚어내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 곧 ‘일하는 모습’으로 부각됨으로 해서 더욱 커지는 것이다.---------본문중에서

목 차

머리말/1

제1부 나는 노동자: 개화부터 6.25 전까지

작자미상 제8과 육조가, 제23과 노동가/11
작자미상 아리랑 打令/16
작자미상 鴨綠江 行進曲/18
동 원 노동자의 대답/20
김석송 오! 棺짜는 木手야!/22
이상화 구루마꾼/23
작자미상 여직공/24
송완순 노동자여/25
한용운 職業婦人/26
임 화 우리 오빠와 화로，우산받은 요꼬하마의 부두, 네거리의 順伊/27
김창술 5월의 훈기/37
주요한 채석장/39
안회남 의매(義妹)/41
박태흠 나는 勞動者/43
이용락 나는 燈臺다/45
김태선 午前 四時/47
김찬승 농촌의 오빠에게/49
김기진 비 오는 날 會館 앞에서/52
김철수 꽃장사 少女에게/55
이현업 深夜의 獨白/56
오장한 雨期, 黃昏/60
노자영 沙工의 노래/62
최재석 땅 파는 젊은이/63
김동림 야간 여상에서, 來日로 向하여/64
장서언 車票팔이 노래/67
박인환 인도네시아 人民에게 주는 詩/68
송돈식 公園/72
김기림 시민행렬/73
김상혼 길닦기 노래/75
백 석 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77

제2부 내 노동으로: 1950년대

노천명 機械소리, 南大門地下道/81
이인식 우렁찬 노래/84
한무학 어린 너와 함께 이 기막힌 삼권 분립의 협공망을 뚫으면서/88
전영경 낙화유수/92
신동문 내 勞動으로/95
홍완기 한발/97

제3부 아아 전태일: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신동엽 鍾路五街/101
신경림 遠隔地, 장마, 驚蟄/104
고 은 어린 바우에게 2, 아주머니, 다시 동일방직 쪼깐이 딸들에게/108
문병란 피혁공장의 소년공원, 트럭운전사 은철이/114
이성부 전태일君，曺서방/119
황명걸 지금은 勞動의 季節/121
김지하 바다에서/123
임정남 편지, 내 둘째동생/125
양성우 청계천에서, 후암동에서, 어류포에서/131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아버님 말씀, 친구여 네가 시를 쓸 때/134
작자미상 아아 전태일, 노동자의 어머니/139
김광규 목발이 김씨/143
하종오 박종만 굿/146
박몽구 영등포 일기(I)/153

제4부 일터에서: 1980년대

곽재구 박득세/157
김사인 철거/159
박영근 철거민 ․ 1/160
채광석 정녕 하나 되어/162
이승철 세차장 夜話/164
박노해 勞動의 새벽, 손 무덤, 안정의 끝/166
김교서 가난을 위하여/173
백봉석 지옥선 ․ 1, 지옥선 ․ 4, 지옥선 ․ 5/175
김기홍 일터에서, 휴식시간, 강선을 풀며/179
김해화 편지, 우리들은, 나의 슬픈 사촌에게/184
정명자 월급날, 엄마 잊지 마세요, 잊지 못할 1978년 2월 21일/190
김형선 무호봉 유감，휴일 특근/198
최명자 막차 손님, 어떤 손님/202
이치백 편지, 구로동 철근공장에 아우를 보내며, 대의원 안씨/205
김근태 현판식/211
김승호 밤일/214
박영환 공사판의 우리 부모/215
안수철 엄마 품에서 잠든 아이야/217
오재훈 꿈과 일터/221
이소리 노동자의 나라, 시간 뺏기기/223
이왕제 우리의 박형은 어제의 박형이 아니다/226
장하운 일터에서/229
정소천 夜問作業 ․ 四/231
최한철 우리의 이름은 노동자라오/233
황두봉 어느 여름날/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