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 박물관 ‘보물상자’가 열리다

수장고 ‘보물급’ 기증유물 80점 9월 24일 첫 공개

 대원군 벼루- 파초선-1912년 최초 돌사진 눈길

‘전설의 명기’오공금(五孔琴)-주립(朱笠)도 첫선

 성균관대학교(총장 김준영) 박물관이 ‘아름다운 기증, 영원한 생명’이라는 주제로 50년 동안 기증을 받아 수장고 깊은 곳에 간직해온 진귀한 유물들을 공개한다.

오는 24일(화) 오전 11시 개막식을 시작으로 12월 24일까지 열리는 박물관 기획전이 그것으로, 80여종의 유믈이 전시된다.

80여종의 유물 중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흥선대원군 관련 유물. 대원군은 불우했던 시절 도포자락에 지필묵과 함께 작은 벼루를 가지고 다니며 특기인 난초를 그려 생계를 유지했다. ‘석파란(石坡蘭)’이라 불리는 난초 그림을 그릴 때 쓰던 벼루가 처음으로 공개된다. 벼루의 앞면에는 사자모양의 무늬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소동파의 글귀가 음각돼 있다. 벼루 앞면 우측 상단 모서리 일부가 파손되어 있는데, 이로 인해 영친왕과 의친왕의 서예 교사였던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 1868∼1933)이 왕실로부터 하사받았고, 아들인 청강 김영기교수가 1965년 성균관대에 기증했다.

또한 대원군이 집정할 당시(올해 집정 150주년) 궁을 오갈 때 그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사용한 파초선(芭蕉扇)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파초선은 국왕이나 재상이 외출할 때 의례용으로 사용한 파초잎 모양처럼 만든 부채이다. ‘대원군 파초선’은 대나무의 표면 겉대를 죽사(竹絲)처럼 얇고 가늘고 길게 가공하여 채상(대나무 광주리)처럼 부채면을 짜 3겹의 주칠을 올렸고, 가는 대나무로 입맥을 만들고, 위와 아래는 소가죽으로 무늬를 넣어 보강했다. 부채의 둘레는 황동에 금도금한 동판으로 둘러감쌌다. 손잡이는 6쪽의 대나무 안팎으로 소의 심줄을 붙이고, 그 위에 주칠을 했다. 조선후기 공예를 대표하는 명품으로, 국왕이 사용했던 파초선에 버금갈 정도로 크고 정교하다. 이 때문에 대원군의 집정시기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원군이 호위무사에게 하사한 술독도 첫선을 보인다.

국악계에서 ‘전설(傳說)의 명기(名器)’로 전해지는 ‘오공금’(五孔琴)이 이번 전시전에서 단연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오공금은 거문고 판에 구멍이 5개 있는 거문고를 말하는데, 조선말의 대표적인 풍류객 이풍익(李豊翼.1804∼1887)이 타던 거문고이다. 전면에 금박을 칠한 거북껍질(玳瑁), 거대한 전복껍질(螺鈿), 호랑이 가죽(虎皮), 백옥으로 만든 매미 등 진귀한 재질로 장식되어 있다. 대원군(大院君)이 감사(監司) 자리와 맞바꾸자 해도 내놓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하는 조선의 스트라디바리우스 같은 명기(名器)이다. 오공금은 국악(國樂)학자이면서 거문고 연주자인 서울대 음대 교수였던 장사훈(張師勛.1916∼1991)이 '국악대사전'에 기록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장교수는 일제 강점기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에서 거문고를 전문으로 연주한 아악수(雅樂手)였으며, 해방 후 국악을 현대적 학문으로 체계화한 학자이다. 장교수는 전공이 거문고이고, 아악의 전통을 잇는 이왕직아악부 소속의 연주자였기 때문에 ‘전설(傳說)의 악기’ 오공금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있었던 것. 오공금을 만들어 연주한 이풍익은 대원군 집정시기에 대사간, 대사성, 대사헌 등의 청관직을 지낸 인물이다. 그의 문집인 '육완당집'(六玩堂集)에 대원군으로부터 진귀한 호박(琥珀) 갓끈을 하사받고 지은 시와 거문고와 관련된 여러 편의 글이 전한다. 오공금은 1967년 증손인 이수영(李遂榮)이 이풍익의 금강산 유람화첩인 '동유첩'(東遊帖)과 함께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했다. 기증 당시 이수영의 전언에 따르면, 집안 뜰에 있는 거대한 오동나무를 잘라 오공금을 제작했고, 이풍익이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으로 집안의 최고 보물로 전해졌다고 한다. 이는 오공금의 뒷면에 새겨진 ‘오공노지(五孔老枝)’‘육완당진장지일(六玩堂珍寶之一)’‘이풍익인(李豊翼印)’ 등의 명문을 통해 확인된다.

또한 흥미를 끄는 유물로는 조선 선비의 자존심이자 손으로 만든 ‘마이크로 세계’라 불리는 주립(朱笠)이 공개된다<사진 4>. 보통 갓은 말총으로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조선 말 갓의 모자부분을 말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잘못 알려진 것이다. 조선시대 갓은 가는 대나무(竹絲)로 모자와 양태를 만들고, 그 위에 비단이나 모시를 씌운다. 모자의 창에 해당하는 양태 부분을 0.2mm 굵기의 말총으로 1mm 간격으로 약 50만 번을 엮어 만들며, 총 연장이 50km나 된다. 주립은 문신 당상관이 융복(戎服)을 입을 때 쓰는 붉은 갓으로, 전체 모양은 보통의 갓인 흑립(黑笠)과 같다. 하지만 모자의 좌우와 후면에 호랑이 수염인 호수(虎鬚)를 꽂고, 정수리 부분인 정자(頂子)에 금은이나 옥 등을 장식한다. 여기에 산호, 호박, 대모, 수정 등을 꿰어 만든 갓끈인 패영(貝纓)을 드리워 사용했다. 이 주립은 서예가 효남(曉楠) 박병규(朴秉圭)의 선조인 박광석(朴光錫.1764∼1845)이 사용한 유물로 현존하는 주립 가운데 가장 크고 완전한 형태이다.

한국 최초의 돌사진은 김영기(金永基.1911∼2003)의 아버지인 해강 김규진이 촬영한 사진이다<사진 5>. 사진에 ‘영긔첫돌긔렴(영기 첫돌 기념)’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사진틀 하단에 한국(韓國) 경성(京城) 천연당(天然堂) 사진사(寫眞師) 김규진(金圭鎭)이라고 인쇄되어 있다. 1912년 아들 김영기의 첫돌을 기념하여 촬영한 사진이다. 그밖에도 보물 1076호 ‘김천리 개국공신녹권’ 등 80여종의 유물이 12월 24일까지 3개월간 전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