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념론의 대표격인 백화파 사상, 일본공산당의 사상, 실용주의라고 할 수 있는 생활 작문 운동, 일본의 초국가주의, 그리고 전후의 실존주의 등 일본 근대의 대표적 사상들을 정면에서 취급한 일본 근대 사상 입문서.

현재까지의 상황으로 볼 때, 현대 사상을 취급한 일본 서적들은 거의가 외국 사상의 여러 유파들을 소개하는 수준, 그것도 그때그때 유행한 사조들을 비판적으로 소개하는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혹 일본의 현대 사상이 거론되는 경우가 있었다 하더라도, 기껏해야 그것은 부록 정도로 취급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이 책은 이와 달리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들을 정면에서 취급한 사상 입문서다. 현실 속에 들어가 운동하면서 이를 변화시킨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들을 확고하게 평가해두지 않는다면, 일본 사상의 발자취를 확고하게 정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의 일본 사상은 갈지자걸음을 겨우 벗어난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최초의 시도로 이 책을 썼다.

현실을 움직이는 동력이 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어떤 사상을 포착하려고 할 경우, 이를 좁은 의미의 철학 영역에만 국한해서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책에서 취급한 여러 유파들이 좁은 의미의 철학적 성과뿐만 아니라 문학·정치·교육·혁명·일상 생활 등 다양한 삶의 분야로부터 선택된 것은, 사상은 가장 구체적인 활동을 통해서만 비로소 현실을 움직이는 힘이 되는 존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도를 지니고 있는 이 책은 특정 사상의 입장에 서서 다른 사상을 비판하는 방식은 취하지 않았다. 또 여러 사상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는 입장 역시도 취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들은 어떠한 사상적 입장에 서게 되더라도 배우지 않을 수 없는 공동의 유산 목록을 가능한 한 공평하게 제시하려고 한다.

특정의 사상을 선택하였다고 해서, 우리는 배워야 할 유산이 그 사상의 과거와 현재 속에만 존재한다는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상이란 그렇게 갑갑한 것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믿는다는 것은, 사상은 기성품과 동일하며 사상을 선택하는 것이 무의식중에 기성품 하나를 사는 것과 동일하다고 믿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독자 제위께서는 사상적 유산들에 대한 우리의 계산과 그 평가 결과에 동의해주실 것인가. 엄정한 비판을 바라는 바이다.

– 1956년 10월, 쓰루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