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은 구한말에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달리 말하면 그는 제국주의체제에서 냉전체제에 이르는 시기를 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근대라는 역사적 시공간에 존재했던, 그리고 20세기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구축되었던 거의 모든 통치형태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가령 제국주의 아래에서는 제국 일본, 식민지 조선, 괴뢰국가 만주국 등을 살았으며, 해방 후 냉전하에서는 미소군정, 한국전쟁, 인공치하, 제1공화국 등을 가로지르며 삶을 영위합니다. 염상섭은 그가 경험한 모든 통치체제의 주류들과 불화했으며, 그리하여 어떤 지배 권력에게도 그 어느 곳에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충만한 지지를 표명하지는 않은 듯합니다. 제국주의 일본과 식민지 조선의 통치권력은 말할 것도 없고, 해방 후에도 분단에 반대하고 통일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말하자면 염상섭은 제국주의ㆍ자본주의ㆍ사회주의 등 근대의 주류적 권력 및 아류들과 끊임없이 불화하며 긴장을 형성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는 평생에 걸쳐 글쓰기를 통해 교전을 진행하며 근대의 가장자리에서 지배 질서와는 다른 대안을 모색하고자 했습니다. 이른바 ‘자연주의 및 사실주의의 선구자’라는 그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은, 그와 같은 글쓰기에 대한 고전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염상섭은 인생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가운데 새로운 인간형과 새로운 삶의 형태를 창조하는 과정으로 문학을 이해했습니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기존의 낡은 인간형과 생활 형태를 해체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성을 생성해 내고자 애썼습니다.

3.1운동에서 4.19까지

 염상섭의 평생에 걸친 문학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어를 꼽자면, 그것은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지하듯이 염상섭의 공적인 삶은 1919년 3ㆍ1운동에서 시작되어 1960년 4ㆍ19로 마무리됩니다. 즉 민주주의의 시간이 열리는 사건들 속에서 그의 삶은 시작되고 마무리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평생에 걸쳐 쓴 소설이라는 장르를 민주주의의 발현과 민중이라는 주체성의 생성 속에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요컨대 염상섭의 삶과 문학의 궁극적 지향은 민주주의의 시간을 향해 열려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염상섭과 함께 근대를 횡보하며 만나보게 될 그의 삶과 소설을 통해 그러한 면모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