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현대사는 말 그대로 질곡의 역사였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고통에 휩싸인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희망을 안겨주기 위해 산중불교의 틀을 깨고 세간으로 한 발 다가서는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은 사부대중을 더욱 힘들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불교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던 데는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정진해온 많은 선지식들의 역할이 있었다. 그 가운데 오늘날 한국불교종단협의회가 각 종단의 이해관계를 떠나 불교계 대의기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사무총장으로서 역량을 발휘한 것을 비롯해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창립에서부터 초기 연착륙에 기여하고, 군승파견을 주도하는가 하면 자비야학 운동을 통해 가난한 집 청년들에게 배움의 길을 터주는데 앞장섰던 스님이 있다.
대한불교관음종 총무원장 홍파 스님이다. 지난 1963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1학년에 입학한 후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가 창립될 때 참여하고, 3대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시작한 스님의 참여불교운동은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사무총장 소임을 맡아 국내외 활동으로 확대됐다. 따라서 스님은 지난 50여년에 걸친 반세기를 불교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셈이다.
홍파 스님은 고희를 맞아 그렇게 활동해온 50년 불교운동과 불법홍포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을 모아 ‘바람 따라 물결 이네’로 엮었다. 스님의 50년 출가생활을 돌아보는 회고록이자 자서전 성격이지만, 그 내용은 한국불교 현대사 이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 만큼 흥미진진하다.
스님은 1961년 태허 대종사 문하에서 득도한 이후 출가수행자로서 불법을 익히고 전파하는데 주력하는 한편, 1963년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발기 총회 참여, 1964년 한일국교정상화 반대 시위 주도, 1965년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3대 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불교운동의 지평을 넓혔다. 이어 청담, 성철 스님 문하에서 공부하기도 한 스님은 1967년 대불련 군승촉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던 중 은사 스님의 뜻을 따라 잠시 외부활동을 접고 불교공부와 불교포교에 매진했다.
그러나 불교운동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고, 1985년 종단협의회 사무총장과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불교계 내부에서의 활동 보폭을 넓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8년 관음종 총무원장 겸 재단이사장으로 취임한 이래 오늘날까지 종단 발전을 이끌고 있으며, 동시에 한국종교인평화회의,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 한중일불교우호교류협의회, 남북불교교류 활동에도 적극 참여해왔다.
책은 불교계 안팎에서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스님의 삶과 불교관련 활동을 크게 3부로 나눠 구성했다. 1부에서는 조계사 옆 견지동 44번지에서 나고 자란 과정을 시작으로, 관음종 창종주인 태허 홍선 스님을 따라 절에서 생활하며 행자시절을 보내고, 여러 스승들 밑에서 공부한 이야기를 담았다. 또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3대 회장으로 활동했던 초기 대불련 활동상과 구도행각에 얽힌 이야기를 엮어 읽는 재미를 더했다.
이어 2부에서는 법화행자로서 종단의 소임을 맡아 펼쳤던 활동을 비롯해 청년 여래운동, 국제학술대회 등 여래의 사도로서 실천한 일, 자비야학, 사원화 운동, 여래사 운동 등을 펼치는 과정에서 겪었던 일화와 포교 이야기 등을 더해 당시 상황까지 엿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3부에서는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사무총장으로 남북, 한일, 한중 등 세계불교와 교류한 현상 이면에 묻어두었던 숨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지난 한국불교 50년 역사에서 겉으로 드러난 정사는 물론 그 이면사까지 담아낸 ‘바람 따라 물결 이네’는 그래서 살아 있는 한국불교 현대사라 할 만하다. 또한 어린 시절 백화산에서 공부했던 이야기, 속가 형제들을 전쟁 중에 잃은 아픔, 사사롭게는 아버지이자 불법문중에서는 스승인 태허 홍선 스님에 대한 이야기 등을 그대로 전하고 있어 스님의 인간적 면모도 함께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책 전반에서 애써 개인의 치적이나 활동상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나보다 남을, 즉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심으로 일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는 이들은 더욱더 현대불교 50년사를 이야기로 듣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누군가는 ‘어제의 역사와 오늘의 노력이 곧 내일 우리가 가야 할 미래’라고 했다. 50여 년 동안 불교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종교와 문화의 울타리마저 넘어섰던 홍파 스님의 고뇌가 담긴 책은 마치 한바탕 공연을 보는 듯 생동감 넘치는 역사서라 할 만하다.
홍파 스님은 ‘바람 따라 물결 이네’와 함께 깨달음에 대한 25편의 논문을 엮어 ‘깨달음 총론’으로 펴내기도 했다. 이 책은 깨달음에 대해 인도철학, 초기불교, 인도불교 및 티베트불교, 대승경전, 한국불교, 현대불교 등을 다각적으로 조명함으로써 깨달음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덧붙였다.
홍파 스님은 “깨달음이란 실천을 의미한다. 그래야 참된 나를 찾을 수 있다. 참된 나를 찾을 수 있다면 인생의 굴곡과 부침에서 부귀영화를 초월해 내가 지혜롭게 존재할 수 있다. 이것은 평화를 의미하고 평화는 공존을 뜻한다”면서 “앎을 실천으로 실천이 참된 나로 참된 나가 평화로 평화가 공존으로 승화되는 과정이 깨달음의 백미다. 이러한 깨달음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인연 짓는 것이 수행인의 본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옮겨 담은 것이 바로 학자들의 역량을 모아 엮은 ‘깨달음 총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