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후지타 료사쿠(1892~1960)는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사학과 교수와 조선총독부 박물관장을 역임한 대표적인 식민사학자였다. 그는 일본의 2차대전 패전 이후에도 일본 고고학회장과 여러 대학 교수를 역임하며 왕성히 활동했고 <조선의 역사>를 남기기도 했다.

후지타는 1922년부터 1944년까지 만주와 조선의 유적지를 조사하며 수천장의 유리원판 사진을 촬영했다. 유리원판 사진술은 셀룰로이드 형태의 필름이 나오기 전 유리에 직접 감광제를 발라 필름처럼 사용해 찍은 사진 기법을 말한다. 1920년대 당시 유리원판 사진 한 장을 촬영하는 데 드는 비용은 중산층 월급에 견줄 정도로 고가였다. 후지타의 사진 작업은 일제와 조선총독부의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가 식민사학을 정당화하기 위해 벌인 고적조사사업의 하나로 촬영한 것이라는 한계점에도 사진들은 파괴되고 훼손된 우리 문화유산의 원형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은 후지타가 남긴 유리원판 필름 1876장 전체를 9년에 걸쳐 디지털 복원했다. 이 가운데 60여점이 24일 개막하는 특별전 ‘유리원판에 비친 한국의 문화유산’에서 선을 보인다.

일제에 의한 문화재 훼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은 1929년 제2회 조선박람회가 끝난 직후 현재의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 부근에서 찍은 총독부와 근정전, 광화문의 사진이다. 이 사진을 보면 광화문이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졌음을 알 수 있다. 1916년 경복궁 흥례문 자리에 조선총독부 신청사를 건립하면서 광화문을 철거하려 했으나 여론에 밀려 이곳에 옮긴 것이다. 일제가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한다는 명목으로 경복궁 전각들을 대부분 철거해 민간에 팔거나 인근의 궁으로 옮겨 황폐해진 경복궁 내부 풍경도 볼 수 있다.

일제시대 촬영된 유리원판은 한국전쟁과 산업화로 사라진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기초자료로 가치가 있다. 1952년 화재로 사라진 전남 곡성의 관음사 원통전과 관음보살상, 후불탱화가 유리원판 사진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고려 말 만들어진 원통전과 관음보살상은 <심청전>에서 심봉사가 공양미 300석을 바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진 평양 광법사의 대웅전과 본당의 천수관음상, 삼존불, 목가탱화의 모습이 사진으로 확인됐다. 평북 영변의 철옹성 입구 관아와 입구문인 ‘언무루’, 영변 약산의 ‘북수구문’도 처음 사진으로 확인됐다. 철옹성은 조선시대 서북방의 중요 거점으로 한국전쟁 때 파괴돼 지금은 언무루만 남아 있다. ‘북수구문’은 철옹성의 수구문으로 개울을 가로지르는 세 개의 석축 홍예문길 위로 세워진 문루로 현재는 유실돼 볼 수 없다. 유리원판 사진들은 후지타가 해방 직후 장서와 함께 일본에 반출하려다 실패해 국내에 남게 된 것을 성균관대가 입수해 소장해온 것이다. 김대식 성균관대 박물관 학예실장은 “유리원판 사진은 일제의 문화 지배의 양상을 보여줄뿐더러 한국의 문화재 복원을 위한 기초가 된다”고 말했다

祝辭 / 金峻永[成均錧大學校 總長] = 9
"유리원판에 비친 한국의 문화유산"전을 개최하며 / 李熙穆[成均錧大學校 博物館長] = 11
Ⅰ. '보존'과 훼손 = 12
  경복궁(景福宮) 일원 = 14
  익산 미륵사지(彌勒寺址) 석탑 = 50
  부여 정림사지(定林寺址) 5층석탑 = 54
  정림사지 앞 불상 = 56
  부여 대조사(大鳥寺) 석조미륵보살입상(石造彌勒菩薩立像) =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