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이 내게로 오다
 일상에서 국악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순간은 언제일까? 우리 것이라는 ‘당위’에서 우리가 다가가거나, 국악이 우리에게 주입되듯 건너오는 일이 흔치 않은 것은 분명하다. 끝없이 시간을 거슬러 오르면 ‘고유함’은 헛된 말껍질이 되어 사라지고, 신중현의 록이나 드렁큰타이거의 힙합, 양방언의 뉴에이지 음악이 독특한 자극을 주며 대중의 귀를 붙들어왔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국악이 좋은 재료이며 효과적인 요소로 현대의 숱한 소리와 만날 때 그 이채로운 충돌음에 가장 크게 귀기울이는 것이 아닐까.

굿판에서 산조무대까지, MC Sniper의 랩에서 혁명가극 ‘피바다’까지
『종횡무진 우리음악 10』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고유함을 창조하며 실체를 형성한 우리음악의 큰 줄기를 해당 분야 최고의 필자가 개성 있는 어법과 다양한 시각 자료를 동원해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미 고전화한 레퍼토리를 해설하거나 왕조사로 구획된 음악사를 일람하는 식의 기존 국악 개론서 유형이 아니다. 먼저 소리와 악기를 통해 우리음악을 이루는 무형·유형의 기초자료를 살피고, 전통음악의 큰 줄기를 이루는 굿·정악·민요(아리랑)·판소리·산조를 이를 만들고 즐기고 계승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에 밀착하여 둘러본다. 여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전통음악을 소재로 다양하게 변모하고 있는 오늘의 음악과 또 다르게 변주되는 북한음악을 살피며 사회에 각인된 음악, 음악에 각인된 사회를 통찰하고, 다시 한 번 상고시대부터 현대까지를 훑어봄으로써 우리음악에 대한 인식의 장을 넓힌다.

현재의 시각으로 보는 우리음악, 우리문화
 글 순서를 따르지 않더라도 각 편은 풍성한 얘깃거리·볼거리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두드림, 우리 문화의 원형을 찾아서’에서 황병기는 현대음악의 화두로 등장한 타악, 그 두드림의 소리로 우리 문화를 종단하는 새로운 체험을 들려준다. “한국사람들은 작대기로 지게목발을 치거나 부지깽이로 부뚜막을 칠망정 절대 손뼉을 치면서 노래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의 풀뿌리 시민들도 술집에서 젓가락으로 상을 두드리며 유행가를 불렀지 손뼉을 치지는 않았습니다”(본문 32쪽)며 손뼉 치는 외래문화의 저급함을 꼬집는데, 옳고 그름을 따기에 앞서 필자 특유의 아릿한 위트를 맛보게 한다.
‘선비들의 음악생각과 문화’에서 송혜진은 이경윤의 「월하탄금도」와 윤제홍의 「송하관수도」 등의 그림을 통해 당대 선비들이 정악을 즐기고 새롭게 생성하는 마음과 정신의 풍경을 그려낸다. 선비들이 아마추어 음악인으로서 필수적으로 의존해야 했던 것이 기록이고 그것이 악보를 발달시켰으며, 오늘날 남아 있는 고악보는 ‘소리 없는 음악사’로서 음악학의 중요한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필자의 관심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고악보들은 한지 위에 단정히 필사된 악보도 있고, 정교하게 목판으로 인쇄된 것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림과 시를 곁들여 묶은 악보도 있고, 정간이나 합자의 원칙을 무시하고 오로지 악기의 구음만을 기록한 악보도 있으며, 책 형태가 아니라 간편한 첩지 식으로 만든 악보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악보의 형태는 악보를 간직하거나 편찬한 풍류 주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여간 흥미진진한 게 아닙니다. 그래서 아직은 구체적인 음악의 변천을 밝히는 데 음악학자들의 관심이 쏠려 있지만, 좀더 여유가 있다면 악보에 배어 있을 풍류의 체취, 거기에 숨겨져 있을 문화적 의미까지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싶어, 고악보의 ‘얼굴’에도 자꾸 마음이 쓰입니다.”(1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