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은 사소한 일이다. 남편이 아내를 놀래주려고 그간 죽 길러왔던 콧수염을 깨끗이 면도해버렸다. 드러난 맨살을 보고 깔깔댈 일인데, 아내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한술 더 떠 "당신에겐 애초에 콧수염 따위는 없었지 않느냐"고 말한다.

아내뿐 아니라 친구들, 회사 동료들, 심지어 단골 담배가게 할아버지까지도 그의 콧수염이 "원래 없었다"고 말하면서 남편의 당혹감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조금 후엔 그의 아버지, 절친한 친구 부부까지도 사라지면서 모두 '없었던 일'이 되어버린다.

유쾌한 '콧수염' 사건으로 시작했던 소설은 긴장감에 가속을 더해가며 미궁으로 빠져들고 급기야는 공포스럽고 괴기스런 정신분열의 세계까지 달려간다. <겨울 아이>에서도 봤듯이, 이처럼 정신분열과 이성 사이의 경계를 지운 추리기법, 그리고 심리묘사는 엠마뉘엘 카레르의 장기이다.

도대체 아내가 미친 것인지, 남편이 미친 것인지, 콧수염은 원래부터 없었는지, 있었는지. 남편과 아내의 신경전을 에워싼 긴장감은 배가되고, 독자들은 흔들리는 추처럼 이쪽저쪽으로 기울며 갈피를 못 잡게 된다.

엠마뉘엘 카레르의 이름을 알린 이 첫 소설에 대해 존 업다이크는 "멋지고, 번득이며, 냉혹한 작품... 놀랍다"는 평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