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농업의 전통과 변화를 조명하고 농업역사를 새롭게 인식하기 위한 제3회 동아시아 농업사학회 국제학술 심포지엄이 지난달 26~28일, 경주 현대호텔에서 농업사학회 회원과 관련인사 1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한국농업사학회(회장 이호철 경북대 교수),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농어민신문, 농림부, 농촌진흥청이 후원한 이번 행사에서 이호철 회장은 “서양농업의 가치만을 최고로 내세우고 있는 DDA 농업협상에 맞서 동아시아적 농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데 이번 행사의 의미가 있다”며 “이번 기회에 세계의 석학과 더불어 한국농업의 숨은 가치를 발굴, 이를 학술적으로 세계에 널리 알리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국제학술 심포지엄에서는 동아시아농업의 전통과 변화라는 담론을 주제로 4편의 기조발제를 포함, 모두 15편의 논문들이 발표됐다. 주요 발표내용을 요약·정리한다. ■제도 변화와 동아시아 농업의 변화 -레이먼 H. 마이어즈 스텐포드대 후버연구소 동아시아에 있어 농업의 근대화를 촉발시킨 중요한 제도적 변화는 개인의 소유권 확인과 이에 대한 정부의 보호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 메이지 정부는 외부지주에게 재산권을 허용하는 새로운 토지조세법을 공표하고, 1872년 토지조사사업을 시행했다. 이 토지조세법은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정부의 보호하에 개인이 자유롭게 토지를 소유, 이용, 양도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러한 개혁 조치는 1902년 대만에서, 그리고 1914년 한국에서도 적용되었고, 이로 인해 창출된 새로운 가족농 계층은 토지를 효율적으로 활용,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반면 중국의 관리들은 1908년이 지나서도 토지 및 노동 생산성을 향상시켜줄 종자, 비료, 농법에 대한 투자를 전혀 고려치 않아 농민들은 여전히 가난을 면치 못하였다. 1949년 10월 정권을 수립한 중국 공산당은 토지개혁을 통해 농촌의 생활양식을 재조직, 집단영농화했다. 이는 중대한 실수였다. 이후 30년간 중국의 농업은 비효율성으로 인해 황폐해졌다. 그러나 1980~1982년, 중국 정부는 농촌의 영농체계를 일종의 혼합소유권의 형태로 개혁, 농민에게 증산의 동기를 부여하고 농업에 대한 공공투자도 늘어나 이후 25년간 중국 농민의 생활수준은 가장 급격히 향상되었다. 오늘날 중국 농업이 직면한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는 공정하고도 효율적인 소유권 분배로 이는 중국 국민과 정부로서는 거대한 도전으로 비쳐질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농서의 편찬 및 외관적 특징 -김영진 농업사학회 명예회장 농서의 정의는 농업의 생산기술이나 농업 생산과 직접관계가 있는 지식을 풀이하되, 그 내용은 동양의 전통적 경험, 농학적 내용을 담은 것으로 한정하였다. 그 결과 한국의 농서로 내용이 비교적 충실한 것은 모두 81종이며, 그 외관적 특징은 비교적 관찬 농서가 많고 그 시대적 분포는 16세기 이전의 전농서 19종 중 12종으로 63%에 해당하며 지역농서가 불과 3종, 전문 농서가 전 농서의 47%로 중국의 75.6%에 비해 현저히 적다. 특히 대부분 난해한 한문체 농서(84%)로 편찬되어 있어 농민의 이해 면에서 농서편찬의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었다. 또 농서편찬자의 대부분은 영농경험이 적은 관료사대부나 향촌사회의 지배층들이었다. 이는 조선조 인사제도가 빚어낸 결과다. 관료들은 반드시 수령을 거쳐야 4품 이상의 대부가 되는데, 수령재임 중 임무의 태반이 권농업무로 좋은 평가를 받아야 승진이 될 수 있어 관료들이 농서 편찬에 나섰던 것으로 풀이된다. ■16세기 이후 중국의 농업발전 -왕쓰밍 남경대 중화농업연구원 중국 농업은 송나라 이후 정체상태에 빠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진실은 그러한 단순한 결론을 부정한다. 1368∼1820년 사이 중국의 경작지는 3배 증가했으나, 생산량은 무려 5.3배나 증가하였다. 작물 재배면적의 3/4정도에서 매 단위 산출량은 인구 증가와 보조를 같이하였다. 19세기 전까지 약 2000년 동안 중국 농업이 세계에서 우뚝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던 이유는 바로 중국의 농민들이 ‘인구변화’ ‘농업자원의 할당’‘경제적인 환경’에 있어서 현명한 결정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20세기 50~70년대에 있어 공유화와 기계화의 실패는 단지 강력하기만 했던 정치적인 추진력에 그 원인이 있다. 그 추진력은 특정 시기에 발생된 내생적인 힘들을 무시하였다. 1978년 이후 ‘외부세계에 대한 개혁과 문호개방’에 있어 엄청난 성공은 유도된 기술 및 제도 혁신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된다. 이러한 분석에 기초해 중국 농업을 발전시키려면 우선 도시화와 3차산업 발전을 통해 농업노동력을 15~20년 이내에 20퍼센트까지 줄여야 한다. 기술적으로 농업에 있어 집약 경영의 전통을 고수해 나간다. 제도적으로 토지 소유권을 사유화, 농민에게 상응하는 이익을 보장해 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각 지방과 지역에 농민경제협력조직을 결성하여, 농업의 산업화를 촉진한다. 이를 통해 농민들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그들의 역량을 쉽게 결집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전기 농법의 전통과 변화 -이호철 경북대학교 교수 우리 농업의 모태라 할 수 있는 15세기 농업기술은 무엇보다 ‘수전농법과 한전농법의 조화’를 바탕으로 한 생태농업이었다. 무리하게 환경을 바꾸기보다 천수답에 순응하고, 매년 밭작물과 벼농사를 교대하는 농업의 시대였다. 특히 이 농법이 노동절약적 성격을 가졌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농업노동력 부족과 관련하여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한전농업의 경우도 ‘1년1작’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한전작물이 소개되었지만, 그 중 두류와 고전작물이 가장 다양하게 분화되었다. 그러한 풍부한 다양성은 재배작물의 다양성과 재배지역의 다양성을 낳았으며, 나아가 이는 우경구와 수경구가 분화·발달한 농구체계와 저투입·친환경의 시비법과 더불어 한국농업의 원형이 되었다. 이러한 조선전기 농경기술은 한국농업, 나아가 ‘동아시아 농업의 한 전형’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WTO는 ‘경제적 비교우위’라는 잣대만으로 우리 농업 속에 담긴 지역성과 다양성, 그리고 전퉁 문화의 가치를 폄하하고 있다. 이제라도 동아시아 전통농법의 참 가치에 바탕을 둔 대안의 농업을 건설해야 한다. ■조선후기 호미씻이 형성의 농업사적 배경 -배영동 안동대 국학부 부교수 민중들의 생활습속으로 여겨지는 민속의 형성과 변화에는 반드시 그럴만한 배경과 요인이 있다. 세시풍속으로 명명되는 문화현상에도 필시 형성·변천·소멸의 과정이 있다고 하겠다. 호미씻이는 간단히 말해서 농부들이 농작물의 핵심적인 재배활동을 모두 마치고, 음력 7월 중순경에 마을단위로 택일하여 먹고 노는 잔치이자 의례를 말한다. 이것이 호미씻이로 명명된 까닭은, 1년이라는 영농주기에서 농작물의 핵심적인 재배활동의 마지막에 위치하는 농작업이 호미를 이용한 제초활동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호미씻이가 우리 역사에 등장한 때는 조선후기였다. 17~8세기는 이앙법과 도맥2작 체계가 일반화되고, 수리시설의 확충으로 논 면적이 증가되어 가던 시기였다. 이앙법은 제초작업에는 노동력을 절감해 주었으나, 새로운 농작업으로 부상된 모내기에서는 집약적인 노동력을 필요로 하였다. 특히 농업용수 공급에 어려움이 있던 상태에서 진행된 모내기와 논매기는 두레와 같은 집약적인 공동협업노동으로 처리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그리하여 1년 중 논매기작업을 종료한 후에, 마을단위 공동협업노동을 매듭짓는다는 차원에서 농민들이 함께 모여 하루를 쉬는 형태의 호미씻이가 형성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