찹쌀 한 말을 시루에 쪄서 가루 누룩 한 되 일곱 홉, 찬 물 한 말 서 되에 섞어 빚었다가 사흘 만에 술이 괴거든 막대로 서너 번 저어 괴던 것이 꺼지거든 놓아두었다가 맑아지거든 쓰되 밥을 아주 차게 식혀서 빚으라.’

현풍 곽씨 19세손인 곽주(1569~1617)의 두 번째 부인 진주하씨의 묘에서 출토된 한글 편지 중 하나의 내용 일부다. 죽엽주 만드는 법을 적은 곽주의 편지다. 곽주가 부인 하씨에게 보낸 편지를 하나 더 보자.

‘보리쌀은 아주 좋게 찧어 쓰도록 하소. 보리쌀이 거칠면 불평할 사람이 많을 것이니 그것을 좋게 도정하여 쓰소. 자네 팔자가 남의 불평을 들으라고 타고났으니 자네 팔자를 한(恨)할 만하데. 강짜를 부리는 사람의 탓일까. 삼년은 눈을 감고 귀를 재우고 견디소.’

400년 전 선비 가족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편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대구박물관은 오는 9월18일까지 현풍의 진주하씨 묘에서 출토된 편지와 의복을 한자리에 모은 특별전시회 ‘4백년 전 편지로 보는 일상-곽주 부부와 가족 이야기’를 연다.

이번 전시에는 출토품 중 가려뽑은 편지 100여편과 의복 1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400여년 전 자상한 선비 부부의 일상생활과 내면을 엿볼 수 있는 편지들을 현대어로 바꾼 문장과 해설을 곁들여, 종류별로 4개 분야로 나눠 전시하고 있다.

1부에는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편지를 모았다. 아이와 아내를 걱정하고 가족을 부양하려는 아버지의 정과 선비로서 자신의 뜻을 지키려는 모습 등이 담겨져 있다. 2부에서는 진주하씨가 남편 곽주에게 쓴 편지와 시집간 딸이 보낸 편지들이다. 곽씨 집안에서 겪어야 했던 갈등, 어머니로서 겪는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글들이다.

3부에서는 의식주 및 생활의례와 관련된 다양한 사연들과 함께 출토된 복식을 선보이고 있다. 곽주가 하씨에게 보낸 편

지 중 의생활과 관련된 것은 42편. 일상복과 제사 의례복, 길쌈과 염색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편지와 함께 수습된 81점의 의복·직물류 중 10여점의 의복이 전시되고 있다. 대부분 무명으로 만들어진 점이 특징이다. 4부에서는 대기근과 전염병이 만연했던 당시의 사회상과 그 속에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한 건강 섭생법·질환 치료법이 담겨진 편지들을 전시하고 있다.

1989년 대구시 달성군 현풍면 대리에 사는 현풍곽씨 후손들이 선대 조모 진주하씨(1580~?) 묘의 이장 작업을 하던 중 하씨의 관 속에서 많은 의복과 편지가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은 대구박물관에 기증되었고, 중요민속자료 229호로 지정되었다. 하씨는 현풍곽씨 19세손 곽주의 두 번째 부인이다. 하씨는 전처 아들과 갈등으로 인해 곽주와 따로 떨어져 살았고, 편지를 통해 여러 사연을 주고받았다. 출토된 172편의 편지 중 곽주가 부인에게 보낸 편지가 105편, 시집 간 딸이 하씨에게 쓴 편지 42편, 하씨가 곽주에게 보낸 편지 6편 등이다.

이번 전시 담당자는 “전시품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살펴보며 유품 주인공들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