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삶에 대한 화두를 받는 것 같다. 주어진 화두는 `여백'이다. 범위가 너무 넓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세분화된 주제도 준비됐다. `자연, 자유, 상상' 중 하나를 택해도 무방하겠다. 삼성미술관 리움(서울 한남동)에서 지난 1일 시작된 개관 3주년 기념 특별전 `한국미술-여백의 발견'에서는 전시된 작품과 소통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주어진다. “풍부한 여백에서 사유라는 가지가 뻗어 나온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동양적 가치의 상징인 `여백'을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면서 보여주는 것”이 이번 전시회의 기획 의도라고 이준 부관장은 말한다. 고미술 28점과 현대미술 33점으로 구성된 것으로 봐도 짐작된다. 그동안 전시회는 특정 시기나 사조, 작가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회는 가야, 신라시대부터 올해 것까지 망라하고 있다. 회화, 사진, 서예, 도자기, 조각 등 작품 종류도 다양하다. 고정관념을 갖고 미술에 접근하는 벽은 여기서 한번 허물어진다. 내 마음에 여백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면 시대나 사조가 중요하진 않을 것이다. 또 하나의 벽은 작품의 공간 배치 방식을 통해 허물어진다. 전시공간은 때론 방처럼 때론 골목처럼, 산책길처럼 나누어졌다. 건축가 승효상씨의 자문을 받아 “한국 전통 정원을 산책하는 느낌이 들도록 공간을 연출했다”는 것이다. 어떤 작품은 흰 자갈을 밟고 가야 만날 수 있다. 포근해 보이는 나무 마루를 딛고 올라서야 볼 수 있는 작품도 있다. `다양한 촉각을 경험'하게 하기 위함이다. `벽에 나란히 걸려 있는 그림, 가운데 공간에 놓인 설치물' 같은 모범 답안은 그곳에 없다.

재치있는 작품 선구안도 즐거움을 준다. 보름달처럼 둥근 조선시대(18세기) `백자호'의 무심한 무표정이 `자유'로, 몸체가 없어 얼굴만 동동 떠있는 것 같은 윤두서의 `자화상'(조선 18세기)이 `상상'으로 분류된 의미를 찾아보는 것은 꽤 재밌다. 보너스처럼 주어지는 것은 명품 작품을 적잖이 감상하게 되는 것이다. 대방광불화엄경변상도, 인왕제색도 등 국보 4점, 보물 7점이 전시된다. 또 박수근, 장욱진, 김환기, 이우환, 백남준, 서도호, 김수자 등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도 적잖다. 전시회를 보고 나서 `텅 빈 충만, 부재하지만 존재하는 그 무엇'에 대해 느낌이 온다면 우리의 일상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