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질 이스깐데르는 국내 독자들에게는 아직 낯선 작가다. 그의 특기는 삶의 단면을 양파를 벗기듯 벗겨내 누구나 그의 글에 공감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봄 햇살이 내리쬐는 '뜨락'처럼, 사람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간이역'처럼 읽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고 넉넉하게 감싸주는 것.

이스깐데르는 인간의 공통적인 특질과 본성에 관심이 많다. 어떤 일, 또는 사건을 풀어헤쳐 새롭게 써나가길 즐긴다. 거기에 자신의 경험을 솔직담백하게 녹여내기도 한다. 그 덕에 그의 글에선 퍽 다양한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지난 일을 되새길 때마다 그에 얽힌 사람과 사연이 함께 덩쿨진 탓이다.

특이하게도 이스깐데르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만 글을 쓴다. 읽는 이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개인적 경험에서 객관적 사실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이스깐데르는 이렇게 하나의 시점만을 고집하며 소년의 눈으로 본 세상과 자연을 보여준다.

<내 마음의 간이역>이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의 관계를 풀어냈다면, <내 마음의 뜨락>은 소년이 경험하는 첫사랑의 아름다움이 섬세하게 표현한다.

나의 우상
진정한 의미의 강인함이 무엇인가를 사춘기 소년들 사이의 우정을 통해 보여준다. '나'의 우상은 관념적 인간이 아니라 참된 노동을 통해 단련된 건강미, 그에 못지않은 모험심과 용기, 두드러지는 탁월함을 갖춘 영웅이었지만 사춘기를 벗어나면서 객관적으로 그 실체를 파악해가는 성장소설이다.

수탉
수탉과 그의 가족들의 관계, 수탉의 권위와 사랑, 승부욕 등이 소년과 수탉의 갈등과 대립이라는 구도를 통해 우화처럼 펼쳐진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는 가축의 삶과 인간의 삶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돈 빌리는 사람
누구라도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려주게 되거나 빌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일어나는 심리적 갈등과 부담, 우정을 밟고 세워지는 벽 등이 재치있는 위트와 섬세함 심리묘사를 통해 리얼하게 다가온다.

어느 여름날의 이야기
해변에서 만난 독일의 한 과학자로부터 듣게 되는 나치 치하의 독일. 파시즘의 광기와 그로 인해 개인의 삶은 물론 우정까지도 시험받고 흔들리게 되는 숨막히는 상황 속에서도 결국은 그 모든 것 이전에 존재하는 인간에 대한 신뢰감을 회복해가는 과정이 샴페인을 마시듯 담담하게 그려진다.

코도르 강 상류의 송어낚시
송어낚시를 하는 사람의 조용한 열정과 대어를 낚았을 때 느끼는 환희가 주변 정경과 어우러지면서 햇살에 빛나는 수채화처럼 맑게 연상되는 글. 낚시꾼간의 미묘한 경쟁심이 가벼운 터치로 그려지고 자연의 힘을 발견하면서 성과물에 대한 가치보다 행위의 의미가 부각된다.

나의 이야기
인간들이 갖는 몇몇 재미있는 특성들에 관한 이야기. 사람들은 각자가 타인들이 부여하는 모습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특성을 갖게 되는데, 그렇게 살아가면서 발견하게 되는 여러 가치 있는 사실들 중에서 작가는 진정한 유머란 절망의 구렁텅이로부터 다시 길을 떠나는 발자국이라는 정의를 우리에게 일러준다